<현실주의의 신화를 넘어: 정치철학적 시선에서 바라본 한반도 평화구상>

김원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전략연구실 책임연구위원)

한반도 평화구축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상황 속에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기댄 그간의 한반도 평화구상이 비현실적인 희망에 기댄 선택은 아니었는가 하는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미 핵을 보유하게 된 그 어떤 국가도 핵을 포기한 사례가 없고, 힘의 우위를 통해 안보를 지킬 수밖에 없는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을 외면한 하나의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말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이란 본래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현실주의의 신화: 홉스에 대한 오독

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국제 관계의 ‘현실’은 토머스 홉스의 ‘자연 상태’ 개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홉스의 자연 상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말한다. 국가가 수립되지 않은 상태, 즉 무정부 상태에서 모든 개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만 하며, 무법의 상태에서 각 개인들이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행하는 모든 행동은 그 자체로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개인들이 늘 전쟁을 벌이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 전쟁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자연 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된다.

홉스가 이야기한 국내적 ‘자연 상태’는 국제정치학자들에 의해 국제 관계의 현실을 설명하는 핵심 어휘가 된다. 세계정부가 부재한 무정부 상태에서 안보는 개별 국가들의 최우선 과제이며,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는 최선의 방책은 군사력의 우위, 힘의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상대방과의 힘의 격차를 더욱 벌이고, 가능하다면 패권국의 지위까지 차지할 수 있을 때 해당 국가는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 국가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무정부 상태에서 개별 국가들의 이러한 안보추구는 그 자체로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국가안보 추구는 사실 홉스 자신의 생각에 따르면 애초에 불가능한 시도일 수밖에 없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가능한 근본 이유는 모든 개인이 그 취약성(vulnerability)에서, 즉 누구나 갑자기 살해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등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에서 개인들은 강자든 약자든 현격한 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근본적인 안보 취약성을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취중에 혹은 한 밤 중에는 얼마든지 약자에 의해서 살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에서 누구나 불가피하게 직면할 수밖에 없는 ‘취약성의 평등’ 상태를 개체들의 힘을 강화함으로써 극복하겠다는 현실주의자들의 발상은 그래서 홉스 자신의 생각과는 양립할 수 없다.

홉스가 말한 이러한 취약성의 평등 상태는 국가 단위에서도 여전히 반복된다. 9.11 테러나 오늘날 북핵 위협을 생각해 보면, 근본적인 안보 취약성이 국가들 사이의 군사력, 즉 힘의 상대적 차이에 의해서 결코 완벽하게 해소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이제 자명해 보인다. 힘의 우위를 통해 절대 안보를 추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과학이 아니라 ‘신화’일 뿐이다. 개별 국가들의 힘을 통한 안보 추구가 결국 소위 ‘안보 딜레마’ 상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 역시 현실주의 안보담론이 가지는 한계를 잘 보여준다.

안전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망이며, 국가의 안전보장이 국가의 존립 이유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정부 상태가 존속하는 한에서 혹은 무정부 상태에 대한 현실주의의 오독이 지속되는 한에서 근본적인 안보 취약성이 결코 제거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명백하다. 개별국가의 힘의 우위를 통해 안보 취약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현실주의자들은 결국 홉스가 말한 무정부 상태의 현실 자체를 망각하고 있는 셈이다.

홉스가 근대국가를 통해 자연 상태를 넘어 평화를 모색하고 칸트가 국제법을 통해 국제적 평화의 길을 모색했던 바와 같이, 평화의 길은 일방적인 힘의 우위가 아니라 무정부 상태 자체를 넘어서고자 하는 곳에서 비로소 열리는 법이다.

한반도의 현실

무정부 상태에 대한 오독이 초래한 비극은 한반도의 분단 역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힘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극단적 대결이 남과 북의 적대관계 속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남북 분단과 6.25 전쟁이 이미 두진영 사이의 국제적 힘의 대결이었다. 전후 북진통일과 적화통일을 위한 남북의 군비경쟁 역시 이념을 명분으로 하는 현실주의적 힘의 대결일 뿐이었다. 2018년 평화를 위한 남과 북의 적극적 노력이 경주되기도 했지만 남북의 안보 딜레마 상황에서 아직까지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남한의 첨단 군사력과 북한의 핵무기라는 비대칭적인 안보 취약성의 구조가 새롭게 자리 잡았을 뿐이다.

북한의 핵무기는 그 자체 우리의 안보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다. 남과 북의 무정부 상태 자체가 극복되지 않는 한 우리가 이러한 비대칭적 위협에 맞서 우리의 안보취약성을 완벽하게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북한핵이 우리의 안보를 넘어 미국의 안보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북한 역시 다양한 안보 취약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냉전 종식 이후 중국, 러시아와 수교한 대한민국과 달리 미국, 일본과 관계 정상화를 이루지 못한 외교적 고립 상황, 둘째, 남과 북의 현격한 경제력 격차와 그로 인한 첨단 무기 수준에서의 심각한 격차, 셋째, 폐쇄적인 북한의 정치-사회 체제가 가지는 위험성 등이 그것이다.그간 남과 북의 현실주의적 힘의 대결은 안보 취약성의 제거가 아니라 안보 취약성의 지속과 확대로 귀결되어 왔을 뿐이다. 남과 북이 서로를 적대하고 위협할 수밖에 없다는, 그리고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힘의 우위를 통해 우리 자신의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뿐이라는 현실주의 신화는 결국 분열과 대립, 그리고 우리가 2017년에 이미 경험했던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의 증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홉스의 발상에 충실한 현실주의자라면, 북한 핵보유의 부당성과 불법성을 지적하기에 앞서서 남과 북이 가지는 안보 취약성의 구조라는 현실부터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가지는 안보상의 근본적인 취약성, 즉 북한의 핵위협을 제거하기위해서는 우리의 상대방인 북한이 가지는 안보 취약성을 동시에 제거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안보 취약성을 제거하기 위해 북미관계 정상화와 평화체제 수립을 보장하면서 이를 북한의 비핵화와 맞교환한다는 싱가포르 선언(2018.6.12)의 핵심 정신 역시 이러한 판단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라는 명령

힘의 우위를 통해 우리의 안보를 공고히 한다는 기존의 안보담론은 우리의 근본적인
안보 취약성을 제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의 군사적 대결 상황 역시 격화시킬 수밖에 없다. 평화를 통해 우리의 안보를 공고히 하는 새로운 길을 지속적으로 모색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상호 존중의 정신 속에서 서로의 안보 취약성을 협력하여 제거해 나감으로써 평화를
구축해 나간다는 이러한 새로운 발상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남과 북의 영원한적대관계와 힘의 대결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주의의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정치의 구성주의자들도 지적하는 바와 같이 남과 북의 관계 역시 우리의 노력에 따라 무정부 상태를 벗어나 새로운 형태로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 상태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과 북의 엄중한 군사적 대치 상황을 고려할 때, 튼튼한 안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우리 공동체의 제1과제임이 분명하다.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욕구인 안전과 안보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 이상의 그 어떤 자기실현과 번영도 생각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문제는 무정부 상태 하의 현실주의적 힘의 대결만으로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완전한 안보가 실현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안보를 통한 평화를 넘어 평화를 통해 우리의 안보를 공고화 하는 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근본 이유다. 남과 북의 파국적 대결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적대와 힘의 대결을 통한 안보를 넘어서 공존과 평화를 통해서 우리의 안보를 공고화 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지속적으로 모색되어야만 한다.

그간의 한반도 평화 구축 노력을 어리석은 이상주의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평화를 통해 우리의 안보를 보다 공고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성과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한반도에서 평화는 우리가 추구해야할 이상일 뿐 아니라 당면한 안보 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현실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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